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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영화의 역사

2021. 10. 17. 11:49

덴마크 영화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역사


 

초기
덴마크 영화계의 파이어니어 피터 엘펠트(Peter Elfelt)는 덴마크 영화를 최초로 촬영한 인물로 1896년부터 1912년 사이 덴마크 생활을 주제로 한 200개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촬영했다.엘펠트는 또 1903년 덴마크 최초의 장편영화도 제작했다.

덴마크에서 처음 영화가 상영된 것은 1896년 6월 코펜하겐의 타운홀에서였는데, 상영된 작품은 외국에서 제작되었다.

황금 시대
1906년 극장주 올레 올센(Ole Olsen)은 덴마크 최초의 영화제작사인 노르딕 필름스 컴퍼니(Nordisk Films Kompagni)를 설립했다.이 회사는 많은 단편영화를 해외에 수출해 수익을 올렸다.1909년까지 노르딕 필름스 외에는 제작사가 없었지만 1910년에는 10개 회사가 설립됐다.지금 이 시기는 덴마크 영화계의 황금기로 불리고 있다.1910년 봄 노르딕 필름스는 단편영화만 촬영한다는 기존 방침을 바꿔 장편영화 제작에도 나섰다.이는 오프스 포토라마 컴퍼니(çrhus Fotorama company)가 1910년 제작한, 30분이 넘는 첫 복수 릴 영화 "Den hvide Slavehandel"(The White Slave Trade, 1910)에서 촉발된 일로써였다.


아스타 닐슨
(1881-1972)
영화가 길어짐에 따라 예술성이 중요시되어 갔다.1910년 "Afgrunden" (The Abyss)은 유럽 최초의 여성 스타로 불리는 아스타 닐센 (Asta Nielsen) 경력의 시발점이 되었다.이 작품은 선정적인 멜로드라마로 이 장르는 곧바로 덴마크 영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다.1911년 노르딕 필름스는 유럽 대형 제작사 중 처음으로 완전한 장편영화를 제작했다.이 작품은 기술적으로나 관객의 호평을 받아 해외에도 수출되었지만, 이 때 에로틱한 장면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1913년 이후, 해외와의 경쟁으로 덴마크 영화는 영화계의 제1인자적 지위를 잃기 시작했다.또한 창의성 결여가 드러나면서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예를 들어 독립 프로듀서였던 벤저민 크리스텐슨은 첩보 영화 "Det hemmelighedsfulde X" (The Mysterious X or Sealed Orders, 1914)와 범죄 드라마 "Hvvnens Nat" (Blind Justice)를 통해 범죄 드라마 "Hvvnens Nat" (Blind Justice Nustice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영화의 융성으로 덴마크에서의 영화제작과 덴마크 영화의 수출은 감소하였다.제1차 세계대전 후 칼 테오도르 드라이엘은 『재판장』 Prssidenten (The President, 1919)과 D.W. 그리피스의 『인트렐런스』(1916)에 영향을 받은 『사탄의 서의 몇 페이지』 Blade af Satans Bog (Leaves)에 영향을 받은 『사탄의 서의 서의 서의 서의 수 페이지』 Blade Satan's Blade af Satans Bog (Leaves하지만 드라이엘이나 벤저민 크리스텐센 같은 감독들은 덴마크 영화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전체적으로 본다면 영화 기술의 향상과는 달리 1920년대의 덴마크 영화는 하강세였다.이 시기에 있어서 특필해야 할 영화는, A·W·샌드버그에 의한 디킨스 영화라고 불린 작품일 것이다.또한 스탠 로렐과 올리버 하디의 전신인 떠돌이 2인조 Fyrtaarnet og Bivognen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희극영화가 국제적인 인기를 끌었다.이런 작품이 있었음에도 1920년대 말엽 덴마크의 영화산업은 신통치 않았다.

1929년 노르딕필름컴퍼니는 음성영화 회사를 세운다.노르딕 필름은 1931년의 The Pastor of Vejlby에 의해 덴마크의 마켓에서 더욱 영향력을 갖게 된다.1930년대에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많이 히트시켰다.하지만 대공황으로 영화사들이 좀 더 진지한 영화 사업에 뛰어들기 어려워졌다.또 어느 나라 영화나 볼 수 있지만 음성이 들어가면서 덴마크 영화가 국제적으로 상영될 가능성이 적어졌다.많은 인기스타, 예를 들어 마거릿 비비(Marguerite Viby), 입 쇤베르그(Ib Schønberg), 페터 말베르(Peter Malberg)와 같은 배우도 출현했고, 이들의 작품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미디어로서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401945년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한 기간에 예술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다.Black Tie (1942)와 멜로디 of Murder (1944) 같은 작품은 인터내셔널 수준의 로맨틱 코미디와 사이코 스릴러였다.또한 미국의 필름 누아르(1945년 이후 나타난)와 같은 어두운 톤의 작품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이다. 요한 야콥슨의 위트 있고 우아한 작품과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품으로 코미디 작품의 질도 올라갔다.또한 Ole Palsbo의 시니컬하고 예리한 작품과 부부로 영화제작을 담당한 Henning-Jensen의 사실적인 작품 등에 의해 전후 바로 수년간 질적 향상을 볼 수 있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 센티멘털한 코미디나 단순한 작품이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1950년대~1970년대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1948-)
1987년 가브리엘 악셀의 바벳 만찬이, 이듬해 빌레 아우구스트의 펠레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 1980년대 말부터 덴마크 영화계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이 시기에 많은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이 Danske Filmskole (Danish School of Film)을 졸업하였다.

1986년에 제작되어 이듬해 공개된 게이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Venner for altid》는 스테판 헨셀만(Stefan Henszelman)이 감독하고 헨셀만과 Alexander Kørschen이 공동으로 각본을 쓴 작품으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이 작품은 1988년 샌프란시스코 국제 레즈비언 & 게이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코펜하겐 레즈비언 & 게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헨셀만은 1990년 또 한 편의 작품 Dagens Donna를 감독했으나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라스 폰 트리에 감독(1956-)
1990년대의 덴마크 영화계는 라스 폰 트리아에 지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유럽 기적의 바다 이디오츠 댄서 인 더 다크 같은 그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많은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1995년부터 시작된 도그마95는 그 엄격한 순결의 맹세를 통해 영화제작자들에게 SFX나 기타 특수효과를 사용하기보다는 스토리 자체와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첫 도그마 영화인 '셀레브레이션'은 토머스 빈터베어의 작품으로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상과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도그마95의 초기 멤버는 라스 폰 트리아, 토마스 빈터베어, 크리스찬 레블링, 소렌 클라크=야콥센의 4명이었다.도그마95는 덴마크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전 세계 영화감독들이 도그마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2000년 이후

매츠 미켈센(1965-)


2000년 이후에도 덴마크에서는 혁신적인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나오고 있다.트리아의 <도그빌>은 자연주의적인 도그마95로부터의 완전한 결별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연극적인 요소를 포함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그래도 눈에 띄게 영화적이다.

퍼 플라이(Per Fly)의 3부작 『The Bench』, 『Inheritance』, 『Manslughter』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또 수잔네 비에르의 어떤 사랑의 풍경과 애프터 웨딩의 히트로 인해 맷 미켈센, 울리크 톰센, 니콜라이 리 카스 같은 배우가 알려지게 됐다.애프터 웨딩은 2006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미프네」나 「행복한 고독」, 「윌버의 사정」, 「어느 사랑의 풍경」등의 각본으로 알려져 있는 아나스·토마스·옌센은, 근래에는 「프레시·델리」나 「Adam's Apples」라는 작품의 감독으로도 알려지게 되어 있다.

다른 저명한 감독으로는 니콜라이 아셀, 크리스토퍼 보, 로네 셸피그, 닐스 아젠 오프레우, 니콜라스 윈딩 레훈, 올레 크리스티안 마드센, 아네트 K 올레센 등이 있다.제83회 아카데미에서는 인 어 베터 월드(수상네 비어 감독)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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